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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피부 하얀가면-프란츠 파농
    에블린's daily/나의 작은 도서관 2025. 1. 7. 00:10

    책은 처음부터 인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검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흑인임에도 흑인을 비하하고, 백인이 우월한 위치에 있던 시대상을 반영한다. 하지만 단순히 역사의 서술이 아니라 작가는 백인의 지배를 받게된 흑인들이 백인을 우러러보고 우열함을 느끼며, 백인이 되고싶은 열망을 가지고 있는 이 정신적인 지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완독하진 못했다. 번역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문장 자체가 연결되어 하나하나 어떤 의식적인 메세지를 주는게 아니고 혼자 독백을 하는 듯 한 느낌을 주고 거기에 대한 해석은 읽는 사람이 꺼내보아야 하는 느낌이 들었다. 더불어 아! 이렇더라! 저렇더라! ~하리라 하며 선전물처럼 소리치는 듯한 말투가 앞에 조금 느껴졌는데 그것도 조금 인상적이었다.

    인종차별주의에 관한 이야기를 특이하게 표현해 놓은 책이라 솔직히 새롭긴 했다. 작가 프란츠 파농은 엘리트 흑인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그리고 생각보다 젊은 나이 36세의 나이에 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책의 내용은 단순히 흑인의 입장에서 백인의 흑인차별을 철폐하자는 얘기가 아니었다. 서문의 한 구절을 보자. "흑인은 백인이기를 원한다. 백인은 인간 조건의 구현에 열중한다." 가장 비극적인 말이기도 하다. 식민지배가 길어지고 유색인종차별이 짙어진 사회에서 흑인은 차별로 인한 결핍과 결함을 느끼며 살아야만하고 지배받는 위치에서 백인이 되기를 바라는 스톡홀름증후군과 같은 행동양상을 띤다. 또한 사랑을 하면서도 서열을 느끼며 인간 대 인간이 아닌 갑과 을의 위치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가장 잔혹한 편견의 삶 자체인 것이다. 결함과 한계를 스스로 의식하는 사람과 반대로 결함을 만들어내고 모든것을 누리고 사는 사람의 삶이 같을 수 있을까? 단순히 차별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삶을 지배받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똑똑하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러지 못하다. 이런 전제들에도 내가 백인이 아니어서라는 절망과 백인이 되고싶다는 열망에 가려져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곤 무엇이 진실인지 중요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참 비극적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타자의 위치, 타자는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내 생각은 타자는 단순히 타인일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내 내면이라고 생각한다. 나(주체)와 별개로 표현하기엔 나를 한계짓고 편견에 사로잡혀 내 삶을 달리 할 수 있는 사람도 결국 나 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 시절의 흑인이었다면, 마요트 카페시아나 장 브뇌즈였다면 백인의 삶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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